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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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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을 기획 주제로 잡기

평론가 반이정

『분홍』은 김지예·한수정·황소영을 초대한 3인전으로, 작업을 접하는 1차원적 표면의 색채를 분홍색으로 쓴 작가 셋을 선별한 전시다. 이 세 작가 중에 분홍색을 자기 작업색으로 특화한 경우는 황소영이 가장 가깝고, 장기와 인체 일부를 에로티즘과 연결지은 김지예의 작업도 대부분 분홍색이라 하겠다. 분홍색 꽃잎의 부분을 강조한 한수정은 다른 채색으로 완성한 꽃이 더 많을 뿐더러, 다양한 시각재현 실험에 방점을 둔 작업을 해온 터라 분홍색과는 연관짓기 어려운 전력이 있다.

그렇지만 『분홍』이 기획된 계기는, 분홍색 표면의 작업들로 전시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한수정의 제안이 발단이었다. 작가 3인 중에 분홍색과 유기성이 가장 낮은 이가 그런 발상을 꺼낸 건데, 그 제안에 ‘그거 괜찮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시각적으로 단번에 각인되는 공통점에 기반한 미술 전시 기획.

색은 언어나 수리를 넘어선 직관의 호소력을 지닌다. 이같은 호소력은 시각예술의 본령이기도 하다. 미술작품마다 풀이하는 해설을 갖다붙이는 건 통념이 되었고, 명화로 지목된 그림은 과유불급의 해석이 주렁주렁 달리게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좋은 미술품은 작업의 표면을 마주하는 순간, 완성도를 직감하는 경험칙이 우리에겐 있다.

분홍색을 여성과 연결짓는 건, 지구촌 대부분에서 합의된 시각 언어다. 남성이 파란색과 연결된다면, 그 대척점에 여성성 나아가 여성 섹슈얼리티와 엮여 사유되는 분홍색이 있다. 성별에 따른 이 같은 색채 이분법을 사진가 윤정미는 프로젝트로 다루기도 했다. 반면 남성미술가 최민화가 제작한 거의 대부분의 분홍빛 회화는 급진 정치미술를 재현할 때 사용되었다. 분홍색은 최민화의 고유색으로 각인됐다.

갤러리 유진목공소의 기획전 『분홍』 은 시각적으로 단번에 각인되는 분홍색을 공유하는 세 작가의 작업들로부터 미술의 촉각성, 인체 감각의 연장, 성애주의性愛主義, 장식 가치 등이 어림짐작할 만한 교집합을 형성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려 한다. 비중의 차이는 있어도 전시를 구성하는 이 네가지 키워드는 세 작가에게 고르게 배어있고, 그것을 분홍빛이 직감적으로 연결시킨다.

p.s. 『분홍』이 시각적으로 각인되는 공통점에 기반한 기획전이라는 입장은 앞서 밝혔다.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추후에도 동일한 컨셉트의 기획전을 이어가려고 한다. 작품 표면에서 시각적인 공통점을 전시의 기획으로 떠올린 이 단순명료한 발상으로부터, <2018 광주비엔날레+부산비엔날레 총평>란 제목으로 연전에 기고했던 내 글이 떠올랐다. 원고의 일부는 이랬다.

“올해 광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민족주의 연구서 『상상의 공동체』를 차용해 전쟁, 분단, 냉전, 포스트인터넷 등 어지간한 연결고리를 지닌 모든 주제를 전시의 큰 주제 속에 포함시켰고, 부산 역시 ‘분리’라는 큰 주제 아래 난민, 디아스포라(이산), 정치 갈등, 경제 갈등 등 다양한 주제를 끌어왔다. 어쩌면 비엔날레들의 다음 주제로 등판할 선수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일지도 모른다. (중략) 특정 사회과학 화두에 최적화된 현대미술(가)이 있을 리가 만무하건만, 전 세계 수백 작가들을 끌어 모아 비엔날레가 정한 단 하나의 주제에 수렴시키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그러다보니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누구도 트집 잡기 어려운 선한 대의명분이나 이미 공인된 사회학적 화두가 주제로 선택된다. 비엔날레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미술이 어느덧 위대한 구호를 대변하는 매체로 둔갑해있다. 냉전, 전쟁, 분단, 소외, 이산, 인종문제, 젠더 등등 절박한 사회문제를 관철하는 진지한 대변인으로 변신해 있다. 믿겨지지 않는 일이다.”

비단 비엔날레처럼 매머드급 기획전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미술판에서 반성없이 되풀이 되는 전시 기획의 공식은 관념적인 화두나 공인된 인문학의 수사를 제목으로 걸고, 직간접으로 연관짓기 까다로운 작품들을 한데 모은 것 같다는 환멸이 내게 차츰 쌓이고 있었다.


분홍 작가 셋
김지예의 도예품은 부서질 듯 가녀리되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 촉각성을 드높인 작업이다. 유약으로 반들반들한 표면이 생물체의 내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내장을 묘사한 그녀의 작업은 성모 마리아의 내장을 상상해서 만들었다는 사연을 후일 남이 쓴 비평을 읽고서야 알았다.) 점액질의 내장은 실물이건 그것의 재현물이건, 보고싶은 형상이긴 어렵다. 그럼에도 살구색과 점액질 형체를 결합시킨 김지예의 반들반들한 도예품은 성애주의를 직감하게 하며 조형미까지 갖추고있다. 그녀의 도예품 대부분이 단번에 무얼 재현한 건지 알기 힘들 만큼 구체적인 형상이 잡히진 않지만, 그런 모호한 신비감이 되려 에로티즘을 심증으로 확신케한다.

김지예의 초기작에 속할 평면 작업도 이 전시에 선택됐다. 도예작업의 연속선 위에 있는 평면작업이다. 새의 암수가 짝짓기하는 다양한 체위들로 균질된 패턴을 만든 평면작업은 도예작업에 비하면 직접적인 성적 유머를 구사하며, 도예작품과는 다른 차원에서 장식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수정의 작업 계보는 일관되게 ‘시각 재현의 다양한 구사법’을 이행한 과정이었다 하겠다. 초기작 「그림자로 보기」 시리즈는 벽면에 문과 문고리의 윤곽을 검정색 시트로 붙여 실제 문이 벽에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1회용 설치작업이다. 젊은 시절 M.C. 에셔M.C. Escher의 착시 기법을 좋아한 작가는 최소한의 정보로 최대한의 눈속임 효과를 내는 작업을 이어갔다. 한수정의 재현 방법은 ‘어떤 사물을 파악할 때, 대상 전체의 정보가 아닌 대상을 특징짓는 일부분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꽃’을 재현 놀이의 대상으로 가져온 건 2005년부터다. 꽃은 미술사에서 오래된 도상이며, 아카데미 미술에선 정물화의 전통을 잇는 계보가 있을 만큼 유구한 주제다. 한수정의 꽃 그림은 최소한의 구성요소만으로 꽃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완전한 꽃의 재현이 아니어도 관람객이 하나의 완성된 꽃으로 지각하도록 유도했다.

2017년 전후로 꽃 그림 재현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 대상의 ‘형태’가 아닌 ‘색’에 집중해서 제작되었다. 오랜 시각예술가의 생활과 노안은 정교한 형태 묘사가 아닌, 색만으로 대상을 완성시키는 대안을 발견하게 했다. 이는 시각예술가가 경험하는 일반 체험을 자신의 작업방법론에 연결시킨 것으로, 창작자의 지각 변화와 작품 사이의 유기성을 재현한 것이라 하겠다.

황소영은 요가 강사를 부업으로 할 만큼 요가가 생활로 내면화된 미술가다. 요가를 통한 인체 체험을 평면 회화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며, 그 점에서 미술의 촉각성과 인체 감각의 회화로의 연장이라는 주제와 맞는다. 황소영은 요가의 수행을 통해 인체의 안팎에서 느껴지는 시간 흐름의 차이를 체험했고, 자연과 자신 사이의 일심동체를 느꼈으며 그 같은 요가 체험을 회화 작업으로 투영하려 했다. 요가를 통해 삶에 흐르는 에너지의 순환 경험은 옛시절의 산수화 전통을 통해 재현하려 했다. 서양화 전공이지만 주제를 동양화의 고전 도상을 매개로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황소영 작업의 주제어는 ‘읽어버린 산수화’다. 오늘날 화단에서 입지가 훨씬 좁아진 옛 산수화의 방법을 빌려와 현대적 회화를 제작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차용한 분홍색 산수화 속에는 요가를 수행하는 현대인의 신체가 숨은 그림처럼 스며있다. 그녀의 모든 ‘준’ 산수화 속에 현대적 광경이 보일 듯 말 듯 배어있다. 다채롭고 농염한 분홍 화면 속에 스며든 다양한 체위의 인체형상은 성애주의의 질감도 스며놓는다.

붓의 움직임과 터치의 비중이 높아서 표현주의적 화면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동양미학의 기운생동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황소영은 빨간색과 흰색이 뒤엉켜 분홍색으로 전면화된 그림을 그리는데, 그 색이 감정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색으로 간주하는 전통사상의 영향도 있지만, 작가가 느낄 때 인체의 수축 이완이 붉은색과 흰색의 조합으로 잘 표현된다고 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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