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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김다슬 : 가상의 시선은 몇 겹의 스크린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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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매개적 조건


‘본다’라는 행위는 더 이상 자연적 형태만을 반영한 결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선, 물리적 세계에 곧장 도달하지 않고 스크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단계를 거쳐 형성된다. 픽셀, 코드, 신호, 데이터 등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시선이 도달하는 대상을 지속해서 조정하고 배열하며, 현실과 유사하도록 새로운 구조로 조직한다. 따라서 시각적 행위는 실재의 직접적 인식이 아닌, 기술적 매개와 기호의 규칙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화된 사건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시뮬라르크와 초실재의 질서


“실재 없는 재현의 반복”,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시뮬라르크와 시뮬레이션(1981)에서 시뮬라르크를 이와 같이 규정한다. 해당 개념은 이미지가 더 이상 실재를 반영하거나 모방하지 않고, 오히려 실재보다 앞서 생성되며, 초실재(hyperreality)를 형성한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체계 내에서만큼은 실재와 재현을 구분하는 행위의 무의미함이 불가피한 사항으로, 이미지의 순환과 증식에 의해 현실이 대체된다. 오늘날 시선은 실재의 진실을 지향하기보다 기술적으로 조작된 배열과 마주한다. 여기서 ‘가상의 시선’이 현실을 대체하는 독립적 조건으로 작동한다.


스크린의 전제와 이미지의 이중성


과거 보조적 장치로 기능하였던 스크린은 더 나아가 시각의 전제로 활성화되어 자리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이미지들은 인공에 의해 새롭게 생성된 경우와 더불어 기존의 시각적 자료가 선택되고 조정되어 제시되기도 한다. 서로 분리되지 않고 동일한 매개 환경 속에서 중첩된 두 범주로 하여금 시선 앞에 서게 된다. 매개 과정을 통해 제시된 구조적 배열, 시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과 오류의 반복을 거쳐 대응 관계를 형성한다. 이번 전시는 해당 지점을 기점으로 기술적 장치에 의해 구성된 시선을 드러내며, 우리가 바라보는 것의 근본적 요소를 중심으로 한다.

 


김나연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기술적 조건을 기반으로 그 속에서 현실의 불안정한 면모를 시각화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미디어는 물리적 표면 탐구와 더불어 스크린, 인터페이스를 통해 세계가 번역되고 재구성되는 실험적 장치로 기능한다. 눈에 띄는 것은 ‘보는 것’ 자체의 구조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다. 이미지가 단일한 시점이나 확장된 실재를 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영상의 흐름을 지연시키거나 반복하고, 중첩되고 붕괴되는 등의 방식으로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시각적 행위를 수용하는 행위가 결국 기술적 합성이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한다.


 


일상적 풍경 또는 인물의 형상이 작업 소재인 듯 비추어질 수 있으나, 이는 이미 픽셀화된 정보 속에서 해체되고 재구성된 존재들이다. 노이즈가 섞인 이미지, 혹은 잔상처럼 남은 스크린의 파편들은 기억과 현재, 실재와 환영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균열 사이에서 이미지는 객체에서 과정, 변환으로 제시된다. 해당 매체는 하나의 행위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인터페이스는 관객의 시선을 능동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시선을 기계적으로 배치하고 지연시키는 플랫폼으로 작용한다. 위 맥락에서 바라보면 화면은 복합적 장면, 즉 데이터의 전이와 실패, 지연의 형성, 시각적 노이즈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기술에 매개된 시선, 본질은 불안정을 내포하고 있으나 끊임없이 중첩된 상태임을 암시하는 시각적 리터러시로 확장된다.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내면에서 매체에 내재한 형식적 구조와 기술적 언어에 대한 정교한 해부가 존재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용되는 AI의 한계, 실재를 구성하는 불완전한 틈의 연속임을 드러낸다. 시각화와 인식의 조건, 그리고 현대에 반성을 이끌어내는 비판적 미학에서 보는 것 자체의 구조적 불안을 환기시킨다. 예컨대 픽셀화된 이미지, 렌더링 오류,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사운드 조각 등, 인식 대상의 실체를 해체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미디어 환경의 조건을 드러낸다.


 


김다슬


동시대 시각 문화 속에서 인간 주체와 존재의 조건을 탐구하며, 작업은 개인적 경험과 비현실적 감각에서 출발한다. 뉴미디어를 인간의 감각과 병렬적 존재로 다루는데, 이를 통해 주체와 세계가 상호 작용하는 구조로 재구성한다. 시선과 존재의 근본적 조건을 사유하려는 철학적 면모가 드러나는 가운데, 현실과 가상,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이분법적 구도 해체의 문제의식이 두드러진다. 관찰자적 시선을 통한 두 세계의 교차, 그리고 그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중심에 있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 주체와 객체를 둘러싼 관계를 재구성하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인간의 감각 확장과 동시에 외부 존재들을 주체적 위치로 끌어올린다. 여기서 비인간적 주체들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적극적 행위자로 기능한다. 이러한 맥락은 브루노 라투르가 말한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의 연장선상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즉, 기술과 서로 얽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그 안에서 각각의 행위성이 발휘되어 새로운 지각 조건과 의미 체계를 산출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질적 시간, 공간, 서사를 병치 및 교차하여 관람자가 자신의 지평과 낯선 차원을 동시에 인지하게끔 한다. 인식 단위를 교차시켜 공동의 이해 위에서 기술과 감각을 결합하며, 새로운 조건을 구성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 사이 모호한 틈새에서 존재와 주체의 조건을 되짚게 한다. 중첩된 영역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이는 세계와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려는 시도 중 일부이다. 기술과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익숙한 지각 체계를 벗어나 스스로의 위치를 재차 사유하도록 이끈다.


 


시각적 패러다임의 급격한 전환


현대 사회의 시각적 패러다임은 이전 시대와 비교해도 급격한 변화를 드러낸다. 원근법은 공간을, 사진은 빛을, 필름은 시간을 재구성하며 인식의 구조를 변형시켰다. 디지털 매체는 이러한 계보 위에서 지각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또, 인공지능이 산출한 이미지가 가져온 파급력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고 새로이 현실보다 더 생생한 효과를 생산 및 배출한다.


 


번역 행위와 지각의 재구성


발단의 시작은 여기부터, 줄곧 이어진다. 기술이 매개한(디지털 시대) 번역 행위는 인간의 지각 활동과는 본질적으로 차이점이 존재한다. 현시대에서 기술은 인간이 느끼는 바를 재설계하고, 구조를 다시 쓰는 주체적 행위자로 기능한다. 인터페이스 기반 작업에서 관객이 움직이는 등 생체신호를 보내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해석과 선택, 필터링, 알고리즘 규칙이 개입되며, 결과적으로 관객이 보는 것은 기계가 구성한 해석의 특징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현실과 가상 경계 해체와 시선의 구조적 조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해체되는 전환의 지점에서, 시선은 어떠한 방식으로 매개되고 재편성되는가를 탐구한다. 기술에 의해 구성된 현실을 통과하여 이미 가공되고 번역된 세계를 다시 읽는 행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현실과 맞닿은 가상이 기술과 매체를 기반으로 지각을 재편성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상의 경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실험적 영역의 일부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의 진실성은 이미 의심받고 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무한히 정교해지지만, 동시에 오류와 왜곡의 반복이 빈번하다. 인간이 지닌 오감 또한 기술과 결탁하여 확장되나, 그 과정에서 우리의 주체적 시선은 점점 더 기계적 프로토콜에 종속된다. 본 전시는 가상의 시선이 형성하는 구조적 조건을 분석하고, 기술적 매개가 재편성한 시각적 패러다임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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