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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김수근의 공간 사옥' 문화재 될 듯… 문화재委, 내년초 등록 여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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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고(故) 김수근의 작품인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의 문화재 등록이 추진된다. 문화재청은 19일 "공간 사옥 건물 중 1971~ 1977년 김수근 설계인 옛 사옥(224.56㎡)의 문화재 등록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장세양 설계인 신사옥(1997)과 이상림 작품인 신식 한옥(2002)은 등록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50년 이상이 지나지 아니한 것이라도 긴급한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것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다'는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제34조를 적용, 지은 지 42년이 된 '공간 사옥'을 문화재로 등록할 방침이다. 오는 25~29일 현지 조사를 벌인 뒤 다음 달 10일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회의의 검토를 거쳐 내년 초 심의에서 등록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등록문화재가 되더라도 소유주가 지자체장에게 30일 전까지 신고만 하면 철거나 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공간 사옥은 최근 공개 매각 위기에 처했고, 문화계 인사 116명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간 사옥의 공공건축박물관 조성과 문화재 등록을 요구했다.


- 조선일보 2013.11.20

[2013.11.19]"공간사옥은 부동산 아닌 문화" 21일 매각 앞두고 문화계 110명 `보존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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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서울 원서동 `공간(空間)사옥`의 보존을 위해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뭉쳤다. 국내 1세대 건축가인 고(故) 김수근의 설계로 1971년 지어진 공간사옥은 지난 1월 공간그룹의 부도로 매각 절차에 들어가 21일 공개매각을 앞두고 있다. 김수근문화재단은 18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3년간 문화예술인들이 꿈과 창작의 나래를 폈던 공간사옥은 부동산이 아니라 문화다.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김원 광장건축 대표, 박찬욱 영화감독,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 110여 명이 참여했다. 


김수근재단은 공간사옥을 공공 건축박물관으로 조성하고 문화재보호법상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요구했지만 소유주가 바뀔지 모른다는 사유로 현재 결정이 보류된 상태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공매 결과를 지켜본 뒤 문화유산ㆍ자연 보존 운동인 `내셔널 트러스트` 추진 방안을 포함해 구체적인 행동 방향을 결정키로 했다. 


- 매일경제 2013.11.19

[2013.11.18]대구비엔날레, 佛 빛의축제 회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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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진비엔날레(운영위원장 구자호·사진)가 지난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빛의 축제'(Festival of Light) 정기총회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회원으로 가입했다. 빛의 축제는 전 세계 20여개국 사진축제들의 연합체로 미국 휴스턴의 '포토페스트', 유럽사진미술관이 주관하는 '파리 사진의 달' 등이 가입해 있다. 최소 3회 이상의 행사를 통해 국제적 수준의 전시 역량을 보여준 사진 행사만이 후보에 오를 수 있다.


- 조선일보 2013.11.18

[2013.11.16] 김운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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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는 15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비상임)에 김운미(56) 한양대 예술학부 교수를 임명했다. 임기는 2년. 

 

조선일보 2013.11.16 토요일 

[2013.11.15]한국 畵壇에 파격 던진 '종이 화가'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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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우 화가 사진


'종이 화가' 권영우(權寧禹·87) 화백이 14일 오전 4시 30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함경남도 이원 출신인 권 화백의 일생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1960년대 첫 개인전부터 산수화나 문인화와는 동떨어진 작품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한지를 찢거나 구멍을 뚫어놓아 동양화의 3대 요소인 지필묵(紙筆墨) 중 종이만 택하고 나머지는 버린 것. 1960년대엔 당시 대표적 재야전인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초대전에 꾸준히 출품했다.


1978년엔 "교수 자리는 목욕탕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나가면 감기 걸릴 것 같은 기분'에 게을러지기 때문에 그만둔다"면서 안정된 중앙대 교수직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 화제를 모았다. 파리 시절 이후엔 구멍 뚫은 한지의 뒷면에 물감을 칠해 앞쪽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고, 1989년 귀국 후엔 합판에 플라스틱 생수통과 숟가락을 붙이고 그 위에 한지를 붙이는 작업으로 다시 변했다.


국전 문교부장관상(1958, 1959), 국전 초대작가상(1974), 대한민국예술원상(1998), 은관문화훈장(2001) 등을 받았으며 1998년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박순일씨, 장남 오협(건축가)·차남 오현(오산전문대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8시. (031) 787-1511


- 조선일보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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